백영옥의 말과 글 [416] 가속과 감속의 세계

유튜브의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의 일상을 보면 무력해질 때가 있다. 아침 명상과 요가, 직접 만든 디톡스 주스를 마시며, 매일 헬스장에 가는 일상이 완벽해서다.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그들의 루틴이 드러나는 순간, 나는 배달 음식을 좋아하는 게으른 느림보가 된다. 소셜미디어의 여행 사진, 친구의 승진 소식, 후배의 결혼 발표까지 우리는 누군가와 내 속도를 비교하며 수시로 초조하고 조급해한다.

 

독일 작가 엘케 하이덴라이히의 ‘나로 늙어간다는 것’에는 “나는 뭐든 가짓수를 줄이고 집중하려 애쓴다”는 문장이 있다. 저자는 신문 전체를 급히 훑지 않고, 읽고 싶은 기사를 끝까지 읽고, 리모컨을 이리저리 누르지 않고 영화를 끝까지 본다. 이것이 속도에 맞서는 자신의 방식이라고 말한다. 세상의 속도는 나이에 비례해 현기증 나게 빨라진다. 나 역시 이제 많이 읽기보다 같은 책을 여러 번 읽는다. 양보다 깊이를 파고든다. 비문증과 노안이 생긴 뒤, 점점 느려진 내 세계를 안경 닦듯 조율하는 방식이다.

 

미국 소설가 필립 로스는 노년을 ‘학살’이자 ‘끝없는 박탈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할 수 없는 것’만을 한탄하며 과거에만 매달린다면 우리는 진짜 노인이 될 뿐이다. 이 상황의 유일한 해독제는 바로 ‘지금’이다. 전력 질주는 힘들어도 빠르게 걷기는 가능하고, 흰머리는 늘었지만 심각한 탈모가 아닌 것에 감사하는 마음. 연애는 어렵지만 돋보기를 쓴 채 연애 소설을 읽는 지금의 고요하고 적요한 시간. 저자가 ‘쾌활한 체념’이라고 부르는 이런 태도가 바로 온전히 현재를 사는 지혜이다.

 

누구도 살아보지 않은 나이를 함부로 예측할 수 없다. 달리는 자동차에서 보는 풍경과 천천히 걸으며 바라보는 세상의 풍경이 다르듯, 어떤 삶의 속도가 더 좋은지 나쁜지 말할 수도 없다. 그러니 자신의 보폭에 맞는 적당한 가속과 감속이 필요할 뿐이다. 타인과의 비교 버튼을 끄고 나만의 쾌적한 온도와 속도를 찾아야 한다. 더우면 벗고, 추우면 입고, 때로는 힘내고, 힘들면 쉬어가면서.

 

2025. 07.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