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서원의 쥐구멍
도산서원의 고직사(庫直舍)에는 곡식을 보관하는 곳간이 여럿 있다.
그 곳간들의 문에는 특이한 것이 있다.
양 문짝을 닫으면 그 가운데 아래쪽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구멍이 생기게 되어있다.
그것은 쥐 구멍인 동시에 고양이 구멍이라고 해설가가 설명한다.
쥐가 들락거리며 곡식을 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동시에, 쥐를 잡는 고양이도 들락거리며 제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는 말이다.
잠시 갸우뚱 혼란이 오는 듯 했지만, 금세 그 대단한 지혜에 무릎을 치게 된다.
쥐는 천성적으로 반드시 곳간에 침투하기 마련이다. 그들은 어디든지 먹을거리만 있는 곳이라면 반드시 쥐구멍을 만든다. 하물며 인간이 나무와 흙으로 지은 곳간이라면 쥐구멍을 피할 수 없다. 좀 오래된 곳간은 담벼락과 바닥 심지어는 천장까지도 온통 쥐구멍 투성이가 되기 마련이다.
쥐를 막으려고 빈틈없이 단단히 막으면 막을수록 쥐구멍은 더욱 많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니 도산서원에서처럼 아예 문짝에다 여유롭게 큼지막한 구멍을 뚫어두면, 쥐들은 당당하게 앞문을 통해 들락거릴 수 있게 되기에, 굳이 수고롭게 따로 구멍을 낼 필요가 없다.
그렇게 곳간은 쥐구멍이 없이 오래도록 깨끗하게 유지될 수 있다.
쥐의 출입을 막아야겠다는 방어 전략은 또 다른 문제를 동반한다.
일단 어떻게 해서든 쥐구멍을 뚫어 곳간에 침투하기만 하면 이제 그곳은 쥐들의 세상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쥐를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한 구조가 쥐의 천적인 고양이의 출입도 더욱 확실하게 막아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산서원은 앞문의 구멍을 고양이도 들락거릴 수 있을 정도로 여유있게 뚫어두었다.
고양이는 수시로 곳간에 들어가 쥐를 잡아야하는 자신의 소임을 다한다. 쥐를 잡지 못해 양식이나 축내는 존재가 아닌 당당한 사냥꾼으로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이제 곳간은 쥐와 고양이, 톰과 제리의 에코시스템 즉 생태계가 구축된다. 생존을 위해 곡식을 탐하는 쥐와 그 쥐를 잡는 포식자가 공존하는 명실상부한 정글 생태계가 구현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잔인한 살육의 현장을 떠올릴 필요는 없다. 아무리 쥐가 많아도 고양이의 포식 및 사냥 능력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쥐의 입장에서도 고양이의 존재로 인해 극도로 절제된 도둑질을 할 수밖에 없다.
결국 곳간 안은 사자와 임팔라가 공존하는 평온한 아프리카 초원과 같은 모습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구멍’과 약간의 곡식을 축내는 정도의 최소의 베품으로 평온하고 청결한 곳간을 누릴 수 있다.
이처럼 쥐구멍은 바로.. 인위를 최대한 배제한 무위자연의 철학이며, 막지 않고 흐르게 하는 우임금의 치수 철학이 아닌가.
그러니 막지 말고 흐르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