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셀프

“물은 셀프”는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지지만, 초창기에는 서비스의 본질, 손님 대접의 의미, 주인의 태도 등에 대한 암묵적인 문화 코드와 충돌, 마치 냉소적이거나 불친절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이 문구는 단지 물 한 잔의 문제라기보다 “이곳은 이제 스스로 움직여야 하는 공간입니다”라는 서비스 축소 또는 자동화된 흐름을 알리는 신호였다.

과거 한국의 외식업 문화는 손님 접대 중심이었다. 음식도 리필해 주는 것이 서비스라고 여겨졌다. 손님은 더 이상 모시는 대상이 아니라, 공간의 이용자가 되는 전환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기대와 권력관계가 재편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손님도 시스템을 이해해야 하며 가게도 지켜야 할 룰이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서비스의 효율화가 아니라 무조건적인 고객 중심주의의 해체를 의미했다.

“손님도 손님 같아야 손님이다”이 말은 그저 경고성 멘트가 아니라, 오늘날의 소비자 권리와 책임의 균형을 상징하는 선언이다.

“손님은 왕입니다”는 “서로 존중하는 문화, 함께 만들어주세요”로 변했고, “불편하신 점 있으시면 말씀 주세요”는 “직원에게 폭언 시 즉시 퇴장 조치됩니다”로 변했다. “서비스는 기본입니다”는 “직원도 사람입니다. 무리한 요구는 삼가주세요”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 그 예다.

반복된 진상 손님 응대 경험, 방송 노출 이후 몰려든 과잉 기대 고객, 친절 강요 문화에 대한 피로, 손님의 갑질과 리뷰 테러에 대한 무력감 등등 사회적 피로에 짓눌린 자영업자의 방어기제로 읽을 수 있다. 더 이상 웃으며 참지 않겠다는 태도다. 손님이라는 이유로 지나친 요구, 무례한 말투, 간섭, 질문을 감내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곧 감정노동자에서 벗어나려는 선언이다.

이 안내문은 무조건 불친절한 식당의 사례가 아니라, 지친 서비스 노동자가 그린 감정의 경계선이며, 오늘날 한국 외식 문화가 맞이한 변화의 자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