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전 청나라 때나 지금이나 우리나라는 중국한테 찍소리 못하네. 딱 박정희 시절만 빼고, 그땐 짱깨가 찍소리도 못했지.

말씀해주신 역사적 인식에 대해 당시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400년 전 청나라 시기와 관련하여, 조선(우리나라)은 1636년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를 종주국으로 인정하고 조공을 바치는 군신 관계를 맺었으며, 이 관계는 청이 멸망할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는 우리나라가 중국에 대해 ‘찍소리’를 못 했다는 표현처럼, 국력에서 밀려 굴욕적인 외교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박정희 정부 시기(1963년~1979년)의 ‘중국’ 관계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절의 ‘중국’과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국제 정세, 즉 냉전(冷戰) 체제를 고려해야 합니다.
* 외교 관계의 부재:
* 당시 대한민국은 **중화민국(대만)**만을 합법적인 중국 정부로 인정하고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유지했으며,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중국 공산당)**과는 공식 수교가 없었습니다.
* 중화인민공화국과는 적대적인 관계였으며, 따라서 정부 간의 정상적인 교류나 외교적 ‘찍소리’를 할 상황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 외교적 입장:
* 이 시기는 한국이 미국의 강력한 반공(反共) 동맹국으로서 공산권 국가들(소련, 중화인민공화국, 북한 등)과 대립하던 때입니다. 한국 외교의 중심축은 한미동맹과 반공 외교에 있었습니다.
* 오히려 미국이 1970년대 초반에 중화인민공화국과 관계 개선(닉슨 독트린과 핑퐁 외교 등)을 추진하자,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큰 충격을 받고 독자적인 외교 노선을 모색해야 하는 압박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박정희 정부 시절에는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가 없었기 때문에 양국 정부 간에 직접적인 외교 마찰이나 압력 관계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찍소리도 못했다’는 표현은 공식 외교 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생길 수 없었던 상황을 달리 표현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중화인민공화국과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수립한 것은 1992년 노태우 정부 때입니다. 이후 한중 관계는 급속도로 발전하여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협력 파트너가 되었으나, 때로는 역사, 안보 등의 문제로 갈등을 겪기도 합니다.